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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업실/생활의 단상

쓰레기 버리기

by 돈가방 2008. 5. 1.
언제나 이사할때는 과감하게 쓸모없는 물건을 버린다.

언제고 한번 보겠지 하는 잡지나 책, 알수없는 인쇄물, 옷가지들...

모조리 다 꺼내서 정리하다보면, 간만에 보는 잡지에 정신이 팔려서

시간을 낭비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사할때 만큼은 지독하리만큼

심사기준(?)이 냉정해져서 왠만하면 처리대상으로 분류된다.

이번 이사에서, 그 심사기준에 미달된 물건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덕지덕지 붙은 각종 스티커와 긁힌 상처가,

나와 같이 보내온 시간을 말해주는 하드케이스다.


일본에서는, 하드케이스 같은 쓰레기를 처리하려면 특별한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하드케이스는 가연성 쓰레기도 아니고, 불연성 쓰레기도 아니다.


그럼 어찌 처리해야 하나?


길이 60cm를 넘는 쓰레기는 "대형 쓰레기"로 분류되어, 시에서 운영하는

최종처리장에서 파쇄작업을 한뒤, 매설하는것으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돈가방도 시에 전화를 한뒤, 직접 처리장 까지 가지고 가겠노라고 신청을 했다.

그저께는 공휴일이었는데, 마침 처리장이 가동한다고 해서 바로 들고 갔다.

하마나코(울동네에 있는 호수) 근처에 있었는데, 자주 달리던 도로변에

거대한 철문이 바로 그 처리장의 입구였다. 평소에 볼때는 뭔가 싶었는데,

이게 시 전체의 대형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일줄이야...

철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보니, 인적도 없고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몇분을 가다 오른쪽으로 커브를 도니, 갑자기 나타나는 검문소삘(?)의 건물.

아자씨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더니, 이름을 묻는다.

좀 있어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자니, 알수없는 미터기의 숫자가 보였다.

쓰레기 버리기전의 자동차 전체중량을 재고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나올때도 다시 중량을 쟀다. 얼마만큼의 쓰레기가 처리됬는지 기록하는 것이리라)

빨간선을 따라가라고 해서 그걸 따라가니, 평범하게 생긴 건물의 출입구가

보이고 방진마스크를 쓴 작업자가 주차 안내를 했다.

주차한 곳 바로 뒤엔, 엄청나게 거대한 구덩이( 한번 빠지면 절대 못올라올것 같은)가 있었는데

가지고 온 하드케이스를 작업자에게 건낸뒤, 뒤를 돌아 나머지 물건을 꺼내었다.

뒤를 돌아본 순간, 하드케이스는 이미 온데간데 없고, 어서 버릴 물건을 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작업자가 손을 벌리고 있었다. 작은 스토브를 건내니 바로 그 구덩이 속으로 휙~

뭔가 아주 바쁜듯, 그 작업자는 더 버릴게 없으면 처리종료 수속을 밟으라고 재촉했다.

나는 쫒기듯 건물에서 빠져나와 다시 차체중량을 측정한뒤 최종처리장을 뒤로 했다.

실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1994년에 내손에 들어와, 14년 가까이 같이 있던 하드케이스에게 작별인사도 못했다... T.T

버리려고 가져간 거지만 좀 착찹한 느낌??

허나, 착찹한 느낌도 1분이 채 되지 않아 걸리적 거리던거 치워서 속이 시원해졌다. ㅋㅋ


뭐, 그런거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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